1982년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거대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화려한 풍경도, 아름다운 인물도 아니었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것은 갱도 붕괴 사고로 숨진 한 광부의 낡고 찢어진 작업복이었다.

당시 서른 살의 신예 화가 황재형이 그린 **‘황지 330’**은 한국 미술계에 충격을 안겼다. 사람보다 큰 화면 속에는 광부가 마지막까지 입고 있었던 작업복과 해진 러닝셔츠, 신분증 표지까지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재현돼 있었다.

누군가는 "그림이 아니라 현장 사진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차라리 사고 현장을 보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말했다.

더 큰 충격은 그림 속에 담긴 현실이었다.

1980년 사북사태 이후 탄광촌은 사회적으로 외면받는 공간이었다. 광부들의 죽음은 뉴스 한 줄로 소비됐고, 위험한 노동환경은 누구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황재형은 죽은 광부의 작업복 한 벌을 통해 그들이 살아온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극사실주의 회화가 아니었다. 노동자의 희생과 시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 선언이었다.

작가는 사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유족의 허락을 받아 실제 작업복을 화실로 가져와 작품을 완성했다. 무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업복의 주름 하나, 구멍 하나까지 집요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수상 이후 예상치 못한 비난도 쏟아졌다.

일부에서는 "광부 생활을 한 것처럼 포장한다"는 음해성 소문까지 퍼졌다. 그러나 정작 황재형은 자신이 현장을 '관찰'만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결국 그는 그림으로만 현실을 말하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1983년 그는 가족을 데리고 강원도 태백으로 이주했다. 실제 광부가 되어 탄광에서 일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한 점이 화가의 인생을 바꿔버린 것이다.

오늘날 미술계는 '황지 330'을 한국 노동미술의 출발점이자 가장 강렬한 기념비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죽은 광부의 낡은 작업복은 더 이상 작업복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화 시대의 희생을 증언하는 기록이자, 한국 현대미술이 현실과 마주한 가장 뜨거운 순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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